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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흰 고무신을 신겨주시다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파일 다운로드
조회수 5966 등록일시 2013-11-14 10:04

“오늘부터 한 삼일 입원해 시술 받으시죠”.

심장초음파 결과를 들여다보며 동산병원 김윤년 교수님이 독백하듯 무심히 던진 말이다.

아마 김 교수님도 최악의 경우로 스탠트 시술을 염두에 둔 듯싶다.

올 봄 건장진당에서도 심전도와 혈압이 정상이고 혈관의 나이는 내 나이보다 젊다는 판정을 받았지 않은가

이렇듯 처음엔 별게 아닌 듯싶었다.

 

10월 들어 아침에 출근해 5층 연구실까지 도착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특히 쌀쌀한 날 아침 무거운 물건을 들고 빨리 걸으면 더욱 증상이 심해져 진땀이 나고 재채기까지 연거푸 나와 10분 이상 호흡을 다듬어야 했다. 아내가 빨리 병원에 가 보라고 다그쳤지만 여러 일들로 바빠 차일피일 미루던 참이었다. 그런데 산자부 주최 무인자율주행자동차대회 참석차 전남 무안에 머무는 동안 상황이 더 악화되어 김 교수님께 진찰을 받은 것이다.

 

스탠트 시술은 심장 관상동맥이 막혔을 때, 팔뚝이나 넓적다리의 동맥을 따라 와이어를 집어넣고 막힌 부위를 찾아 철망모양의 스탠트로 혈관을 확장하는 시술이다. 외과 수술이 아닌 비교적 간단한 시술이어서 통상 시술 후 3~5일 내에 퇴원할 수 있다.

 

지난 10.17 오전 수업 후, 나는 대수로운 마음으로 입원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진행된 조영제 관상동맥 촬영과 CT 촬영 결과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심장근육에 혈액을 60% 공급하는 왼쪽의 주 동맥과 20%의 가운데 동맥이 완전히 막혀 사진에조차 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남은 오른 쪽 동맥조차 두 지점에서 소세지 매듭 모양으로 거의 막혀가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오른쪽 동맥 20%가 심장을 먹여 살린 겁니다. 왼쪽 막힌 건 꽤 오래되 보이고요”.

문제는 왼쪽과 중앙 동맥의 막힌 지점이 사진에 나타나지 않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의 손 감각에 의존해 와이어로 막힌 곳을 찾아 뚫는 것은 자칫 혈관을 손상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나는 결심해야 했다.

급한대로 왼쪽과 중앙의 막힌 혈관을 내버려둔 채 오른쪽 혈관만 스탠드 시술할 거냐. 그러나 이것은 김 교수님의 말대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이다.

남은 방안은 관상동맥우회술뿐이었다. 관상동맥우회술이란 다리와 팔의 정맥을 잘라내어 막힌 관상동맥을 우회하도록 새로운 동맥을 심장에 이식하는 것이다.

간단히 생각했던 것이 대형 사고가 된 셈이다.

 

마침내 나는 10.21 수술대에 누웠다.

오전 7시반에 시작된 수술은 동산병원 흉부외과 나찬영 교수님의 집도로 오후 2시까지 6시간 넘어 끝났다.

수술은 성공적이란다.

나 교수님은 수술부위가 매우 아플 거라 하였고 여러 분이 수술 후 통증을 염려하였지만 이상하도록 나는 별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수술 후 열흘이 지나 퇴원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날 들이다.

목사님들과 교우들, 제자와 학생들, 동료 교수님들, 여동생 가족과 친척들, 많은 분들에게 나는 사랑과 기도의 빚을 졌다.

내가 속한 공동체와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아내에게 미안하며 감사하다.

아내는 지금도 매일 상처부위를 소독하며 붕대로 감싸준다. 머리를 감기고 발을 씻겨준다. 옆으로 돌아누워 잠자지 못하는지라 잠자리에 몸이 질려 깰 때면 그 작은 손으로 굳은 어깨와 등판을 열심히 마사지 해준다. 그리고 입맛 잃은 나를 위해 하나라도 더 먹이려 애쓴다.

진정 나를 돕는 배필이다.

아, 나는 언제 아내에게 이렇듯 도움이 된 적이 있었던가.

 

병상에서의 어느 날 밤, 꿈을 꿨다.

그게 아마 천국이었던 모양이다.

어렸던 적 놀았던 마을, 낯설지 않은 친근한 곳, 온갖 아기자기한 재미와 동무들과 유쾌함이 넘치는 곳.

그런데 신나게 놀다보니 날이 저물어 귀가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문득 발을 내려다보니,

“아 이런!”

이전에 신던 신발이 아니었다. 내 발에는 어느새 하얀 고무신이 신겨져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심장수술을 통해 내게 새로운 복음의 신발을 신겨주셨다고.

그리고 소망한다.

오래전 스틸워터에서 만났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제는 주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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